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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다

세상을 뒤집어 놓는 큰 사건도 처음에는 별것 아닌 일로 시작되는 경우가 있다. 지난 노동절 연휴 동안 내가 경험한 일이 그러하다.   내 차에는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박스가 달려 있다. 차에 탄 후 스위치를 누르면 박스가 열리고, 체인이 내려와 휠체어를 박스에 싣는다. 이놈 덕에 남의 도움 없이 혼자 차를 몰고 다닐 수 있다.     토요일 저녁 생일을 맞은 친구네와 저녁을 먹은 후, 맥도널드에 가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휠체어를 내리려는데 박스가 열리지 않는다. 스위치를 누르면 ‘딸깍’ 하고 연결되는 소리가 나야 하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박스 한 귀퉁이에 있는 뚜껑을 열고 수동으로 박스를 열어 휠체어를 꺼내고, 주일에는 휠체어를 접어 아내가 트렁크에 넣고 교회에 가면 되고, 수리는 휴일이 지나고 천천히 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 탓이다.     집에 돌아와 조카 녀석을 불러 휠체어를 꺼내 달라고 하니, 잠시 후, 수동도 작동이 안 된다고 한다. 갑자기 난감해졌다. 나를 업고 집에 들어간들 그다음은 어떻게 한다? 차고에 있는 간이 접이식 전동 휠체어 생각이 났다. 아내가 그놈을 꺼내와 타고 겨우 집에 들어왔다.     3일간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전동 휠체어는 가파른 경사로를 오르거나 먼 거리를 다닐 때는 편리하지만, 좁은 공간에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50년대에 지어진 미국 집들은 복도며 화장실의 공간이 좁다. 전동 휠체어로 좁은 실내를 누비고 다니는 일은 고난도의 조종 기술을 필요로 한다. 변기와 세면대에 접근하는 것도 평소에 쓰던 휠체어와는 각도와 거리가 다르다.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3일을 겨우 버티고 화요일 아침 수리점으로 달려갔다. 평소에 안면이 있는 앤디가 나왔다. 장황한 내 설명을 듣더니 아무 말 않고 스위치를 누른다. 박스가 열리며 휠체어가 내려온다. 어찌 이런 황당한 일이!     이야기는 3주 전으로 돌아간다. 조카 녀석의 생일이라 세 식구 외식을 하고 돌아와 휠체어를 내리는데 박스 안에서 ‘따악’ 하며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아내와 조카에게 이야기하니 손전등을 비추어 보고는 어딘가 연결되어 있던 스프링의 한쪽이 떨어진 것 같다고 한다. 박스를 다시 여닫아 보니 작동하는 데는 이상이 없다. 아마도 안에 있는 전기배선을 잡아 주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 다음에 수리점에 갈 때 봐달라고 해야지 하고 넘어갔다.     박스를 점검한 앤디의말인즉, 그 스프링은 박스를 여닫을 때 부품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박스가 낡아 이것저것 갈아야 할 것이 있다고 했다. 일단 작동은 되니 오늘은 집에 가고, 부품이 오면 연락해주마고 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 기계도 사람의 몸도 이상이 생기면 신호를 보낸다. 별 탈 없이 돌아간다고 이를 무시하면 큰코다칠 일이 생기는 법이다. 평소에 관리를 잘하고 스프링이 부러졌을 때 수리점에 갔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일이다. 안전불감증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며 다시 되새겨 본다. “유비무환” 고동운/ 전 가주 공무원이 아침에 가래로 호미 전동 휠체어 접이식 전동 토요일 저녁

2024-09-04

[열린 광장] 멕시코로 보낸 전동 휠체어

16년간 정들었던 멕시코 산퀸틴을 2년반 만에 방문했다. 오랜 기간 의료봉사를 갔던 지역이었지만 이번에는 방문 목적이 달랐다. 가는 세월에 피할 수 없는 체력의 한계로 의료봉사를 접고 택한 휴식의 낚시 여행이라 여유롭고 즐겁기만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무언가 빠진 허전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오랫동안 해오던 봉사의 시간이 빠져 나사 하나가 없는 것같은 마음이 든 것이다.     전처럼 다시 동네 거리자 세일을 찾아 전동 휠체어를 구입했다.     배터리 교체와 정비는 지난 16년간 수리를 무료로 정성스럽게 봐주셨던 과묵한 김 선생님이 또 맡았다. 다리나 팔이 불편한 장애인을 찾아내는 일은 항상 멕시코 현지 주민으로 16년간 같이 봉사에 참여했던 게르모가 담당했다.     우리 일행은 현지에 도착하면 휠체어를 줄 사람을 찾는다. 사지 중 오직 한 손만 움직일 수 있는 신체 장애인을 찾아 운전할 정도의 정신적인 능력이 있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이런 사람들 중에서도 가난한 경우가 최우선 순위다. 일행은 장애인에게 운전 시범을 보이고 따뜻한 대화로 사용 방법 등을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현지에 도착해 선천적 장애를 가진 14살에게 전동 휠체어를 선물했다. 순간 소녀의 얼굴에 실망의 표정이 어린다. 의외다. 우리 일행은 그가 겪었을 슬픔의 나날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자기 힘으로 몸을 이동할 수 있게 된 소녀를 보려고 멀리서 찾아 간 것이다.     그 소녀는 오른팔에 장애를 가졌는데 운전대는 오른쪽에 있었다. 소녀는 오직 왼손만 움직일 수 있었다.     이때 같은 호텔에 모터사이클 경주팀의 수리 기술자로 온 백인 2명이 이 광경을 보고 수리를 자원했다. 그들은 하던 일을 제치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핸들을 바꾸는 작업을 하면서 즐거운 표정이었다. 작업을 하면서도 쉴 새 없이 소녀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들의 대화와 수리 과정을 우리 일행이 지켜보면서 아직도 지구 한 구석에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그들의 온정을 몸으로 느꼈다.     언제나 조금은 힘든 과정(구입, 수리, 운반, 전달 등)이지만 장애인들이 태어나 처움으로 손수 직접 이동하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은 감격스럽다. 그들은 지난날의 슬펐던 시간을 잊은 듯 환호를 쏟아낸다. 이 순간 힘들었던 일은 녹아 버리듯 잊히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가슴에 따스함이 전해온다.     전동 휠체어가 그들의 두 다리가 되어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차게 뛰어 오른다. 이런 감정이 그동안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지나간 일이 다시 또 해보고 싶으면 추억이고, 다시 하기 싫으면 경험이라고 한다. 앞으로도 동료들과 같이 이 나눔의 자리를 같이 하며 추억을 계속 쌓아갈 것이다. 그간 전동 휠체어를 받은 사람들이, 새 ‘다리’를 갖고 인생의 투사가 되어 슬픔을 극복하는 삶을 이어가기를 기원해 본다.  최청원 / 내과 의사열린 광장 멕시코 휠체어 전동 휠체어 멕시코 현지 그간 전동

2022-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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